1. 미하일은 어린시절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미하일의 어린 시절은 상당히 불우했다. 자신의 아버지가 세상에 이름을 날리던 기사였다는 사실도 모르는 채, 구두쇠 악덕 상인에게 맡겨져 이름도 없고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는 것만이 전부인 삶을 살았던 것이다. 이 당시의 미하일은 요상한 방향의 될성부른 싹을 보였다. 일단, 물건 배달가는 집의 주인이 여자일 경우 미하일은 그곳에서 한동안 붙들려 여자들의 수다를 들어주곤 해야 했다. 나이를 먹은 중년의 여성들은 여리한 미소년같이 부드러운 미하일의 외모를 좋아했고 소년에게 이름이 없다는 것은 그녀들에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유 한잔 따라 놓아주고 남편과의 이야기나 옆집 여편네의 흉을 한참 보고 있으면 밖에서 미하일의 보호자를 자처한 상인이 미하일을 찾는 소리가 들려왔고 헐레벌떡 달려나가는 미하일의 뒷모습을 아쉬운 표정으로 바라보곤 했다. 미하일이 나이 많은 여성에게만 인기가 있었던 것은 또 아니다. 한창때의 처녀들 또한 미하일을 놀려먹는 것을 좋아했다. 고의인 듯 아닌 듯 제 몸집보다 더 큰 배달물건을 짊어지고 걸어가는 미하일의 옆을 지나갈 때에면 무르익은 몸을 일부러 소년에게 부딪히기도 하고 들으라는 듯이 소리높여 까르르 웃기도 했다. 때로는 노골적인 추파에 소년이 얼굴을 붉히고 도망치기라도 하면 한동안은 소년에 대한 저질스런 농담과 이야기들로 마을의 은밀한 구석구석이 후끈 달아오르곤 했다. 물론 상인에게 혼나는 것도 싫었고 끝이 없는 남의 험담을 듣는 것도 불편했던 미하일이 자신에 대해 호기심을 보이는 사람들을 일일이 피해다니려 노력을 해야 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보이는 그대로, 행운인지 불행인지 미하일은 또래 아이들이 보기에 ‘귀족같다’는 수식어가 어울리게 하는 외모를 갖고 태어났다. 금색의 고수머리는 정돈할 시간도 없어 뒷목을 아슬아슬히 덮을 정도로 내려왔고 누구도 그에게 무언가를 배우라 말한 적이 없지만 온갖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쪽빛 눈은 왜곡없이 세상을 온전히 담았다. 뭘 제대로 먹은 적이 없어서인지 체구는 작았지만 지속된 노동 때문에 힘은 생각보다 강하고, 자신의 신체를 쓰는 요령도 붙어 있었으며 날렵했다. 웃음을 짓는 일이 좀처럼 없기는 했지만 때때로 마을 근처에 거주하는 어린 아이들에게 다정한 미소를 지어주는 날에는 그와 더 놀고 싶다고 떼를 쓰는 자식을 달래려 애쓰는 어머니들이 마을에서 미하일을 탓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자신의 지위와는 관계 없이, 또한 자신에게 이름이 없다는 사실에도 구애되지 않고 미하일의 관심은 자신이 드문드문 상인이 들여오는 짐 구석에서 발견해내는 낡은 책들에 있었다. 글을 알고 싶다. 그것이 미하일의 유일한 바람이었다. 안타깝게도 당시 어렸던 미하일에게 글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당연히 상인은 미하일이 문자를 알게 된다면 더 성가실 것이라 여겼으므로 미하일의 눈에 비치는 문자는 단지 기묘한 형태를 가진 그림으로 밖엔 보이지 않았다. 다만, 미하일은 그 기묘한 그림에서 규칙을 발견해 냈다. 낡은 책에서 발견한 기묘한 그림의 덩어리는 그것이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미하일에게 알려 주었고 그것이 미하일의 내면에 있던 무언가에 불을 질렀다. ‘더 알고 싶다.’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자신도 지식을 손에 넣고 싶다.’ 차마 그럴 용기가 아직은 생기지 않아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는 바람이었지만 미하일의 마음 속에서 배우고자 하는 욕구는 차근차근 몸집을 불려 나갔다. 그렇기에 어느날 자신의 눈 앞에 나타나 손을 내미는 시그너스와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나인하트의 손을 잡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2. 나인하트의 첫 번째 갈굼
처음 그들과 함께 길을 떠난 미하일은 그들의 눈치를 보기에 바빴다. 고귀한 출신이 무색하게 불우했던 잠깐의 어린 시절은 그를 밑바닥의 사람들마냥 비굴하게 만들어 놓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던 것이다. 나인하트는 그런 미하일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등짝을 때렸다.
“여제의 옆에 서있게 될 사람이 비굴하게 남의 눈치만 보아서야 쓰겠습니까. 아마도 말입니다. 설마 그렇지는 않겠지만 이 세상에 당신보다 쓸 만한 인재가 없다면 당신은 자존감의 문제가 아니라 오금이 저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의 곁에서 위엄을 보여야 합니다. 정말 최악의 경우로군요. 당신만한 인재가 없다니. 정말..”
나인하트는 혀를 찼고, 미하일은 혀에 기름이라도 바른 듯이 독설을 줄줄 내뱉는 나인하트의 말에 넋이 잠깐 나갈 뻔 했다. 그리고 얼굴을 붉혔다. 창피했다. 미하일을 뭐라 대꾸를 하려 입을 벌렸지만 뒤이어 책사의 입 밖으로 나온 말이 미하일의 입을 틀어 막았다.
“당신이 어떤 환경에서 자라왔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가짐이죠. 뻔한 말을 제가 왜 입에 담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제 시간은 도매가로 넘어갈 정도로 싸구려가 아닙니다만,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 보십시오. 만일 당신의 질문을 들어줄 가치가 있다면 저는 기꺼이 당신에게 제 지식을 전달해 줄 것입니다.”
“..가치는 누가 정합니까?”
미하일이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사실은 책사의 말 중간에 끼어들 타이밍을 노리다가 간신히 질문을 한 것이었다.
“그야 내 앞에서 멍청한 얼굴을 하고 서 있는 당신이지요.”
“질문이 당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요?”
“하하. 이미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질문은 가치를 잃었네요. 미하일, 저는 지금 당신이 한 질문에 대답할 필요성을 못 느끼겠습니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나인하트를 본 미하일은 마음 속으로 이를 갈았다. 후에 에레브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가(여제를 제외한) 이 책사의 혀에 이를 바득바득 갈게 된다. 미하일은 그 기념할 만한 문을 연 것이다. 이 대화 직후 미하일은 자신이 품에 소중히 안고 있던 낡은 책을 나인하트 앞에 던지듯이 올려놓았다. 나인하트는 가늘게 웃으며 미하일에게 물었다.
“이것은?”
“나는 글을 모릅니다. 당신이 알려 주세요.”
“예절부터 배워야 쓰겠습니다만, 그 전에 제 이름부터 다시 한 번 기억하시죠 미하일. 제 이름은 나인하트입니다.”
후에 에레브의 경제권과 실질적 권력을(?) 쥐게 되는 나인하트는 어린 소년을 바라 보았다. 열이 올려 씩씩거리는 숨소리를 감추지는 못하고 있다만, 총기 어린 눈은 분명 그의 안에서 넘실거리는 학구열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3. 사람 만들어 놓겠습니다.(feat 나인하트)
미하일은 나인하트에게 하루가 멀다 하고 혼났다. 글을 익히는 것은 비교적 빨랐으나 나인하트는 미하일에게 단지 글을 가르치는 것에서만 멈추지 않았다. 고작 12살 쯤 되었을 법한 소년에게 배우게 할 것이 뭐 그리 많겠느냐 싶겠다만, 미하일이 문장을 더듬거리기는 하지만 별 무리 없이 읽게 되었을 때, 굵기가 팔뚝만한 책을 몇 권 들고 왔다. 미하일은 눈이 동그래져서 그 책들을 바라보았다.
“뭡니까?”
“뭐긴요. 당신이 외워야 할 것들입니다.”
이번엔 미하일의 넋이 완전히 나갔다.
“간단한 예절부터 시작할 겁니다. 보아하니 식사예절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 같습니다만.. 앞으로 많은 사람들과 만찬을 함께 할 것인데 그들 앞에서 당신이 한손으로 닭다리를 쥐고 뜯어먹는 모습, 난 죽어도 못 봅니다.”
식사 예절부터 올바르게 깃펜을 쥐는 법, 인사하는 법, 걸음걸이는 걷는 법, 예복을 갖추어 입는 법, 써서는 될 말과 쓰면 안될 말까지 생활 전반에 걸친 상식과 세계에 현존하는 왕국들의 역사와 문화, 계보, 심지어 나인하트는 기본적인 검술과 호신술도 미하일에게 가르치려고 들었다. 이후에 미하일은 회상한다. 자신의 첫 스승에 가장 가까운 사람은 나인하트일 것이라고. 미하일은 울며 겨자 먹기로 온갖 예절을 배웠고 검술 또한 기본적인 것에 한에서 몸에 익혔다. 그리고 스펀지처럼 쭉쭉 지식을 흡수하는 미하일은 나인하트는 상당히 만족스런 표정으로 지켜 보았다. 그리고 나인하트는 어느날 미하일을 불러 실험삼아 임무를 시켜 보기 시작했고...
4. 뭐? 첫인상? 몰라.
누구나가 예상하다 시피 미하일과 이카르트의 만남은 썩 좋지 못한 것이었다. 미하일은 후에 어느날 눈 떠보니 시꺼먼 도적놈이 눈 앞에 있었다고 말한다. 그 말대로 어느날 갑자기 이카르트는 에레브의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어 왔다. 그의 본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는 이제 아무도 모른다. 그날 미하일은 여느때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여제의 정원 근처를 한바퀴 뛰는 가벼운 운동을 끝내고 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에 들어섰다. 그리고 자신보다 먼저 와서 빵을 뜯어먹고 있는 이카르트를 보았다. 미하일은 저 얼굴을 본 적 있었던가 하며 이카르트의 얼굴을 본의 아니게 빤히 쳐다보았고 미하일의 시선을 느낀 이카르트는 미하일을 보고 말했다.
"뭘 봐. 못생긴 계집애야."
미하일의 이카르트에 대한 첫인상은, 최악이었다. 이카르트가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발언은 미하일에게 두가지 이유로 인한 분노를 가져다 주었다. 첫 번째로 모든 사람들은 못생겼다는 말을 탐탁치 않아 한다. 미하일은 외모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지거나 신경쓰는 편이 아니었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못생겼다는 말을 듣는 것은 미하일에게도 그렇게 기분 좋은 말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두 번째는 자신을 계집애 라고 부른 것이었다. 외관을 보기에 아직 소년이라고 불리는 나이이기는 했으나 미하일의 어깨는 벌어져서 여자라고는 도저히 부를 수 없는 체격이었고, 이제 얼추 애 티를 벗은 얼굴 또한 전형적인 미남자의 윤곽을 보이고 있었다. 어릴 적 진절머리가 나게 여자들로부터 희롱을 받았던 미하일은 내심 기생오라비 같다, 계집애 같다는 말에 대하여 트라우마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었고 이카르트의 발언은 미하일의 지뢰를 건드리고 말았던 것이다. 뭘 보냐는 말만을 들었다면 미하일은 자신의 실례를 이카르트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을 것이다.(솔직히 이 말도 열받기는 했다. 처음보는 사람에게 뭘 보냐니. 생각해보면 세 단어로 이루어진 이카르트의 말은 지적을 하지 않을 곳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주어는 너, 수식어는 못생겼다, 목적어는 계집애가 붙은 말을 듣고 사과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본인이 사과를 받아야 했다. 미하일은 식당 구석에 놓여있는 빗자루의 손잡이 밑부분을 잡고 이카르트에게로 돌아섰다. 이카르트는 우물우물 빵을 씹으며 미하일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미하일의 견습 기사의 긍지를 담아 외쳤다.
“참을 수 없는 모욕이다. 당신, 나와 결투를 하자!”
이카르트가 배를 잡고 뒤집어졌다.
이카르트의 과거를 간략하게 말하자면 그는 도적이 되지 않고서는 못배길 환경에서 자랐다. 자세한 언급은 피하기에 이카르트의 과거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다만 그에게는 스승이 있다는 것을 에레브의 안다고 하는 자들은 꽤 알고 있었는데 이카르트는 살기 위한 기술을 그녀에게 배웠으며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스승을 떠나 에레브에 도착한 것이다. 미하일의 고함소리를 듣고 에레브의 기사들이 모여 들었으며 이카르트는 양 팔을 붙들려 나인하트에게 끌려가며 꽤나 관심있게 에레브의 구석구석을 관찰했다. 도중에도 피실피실 웃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이카르트에게 있어서 기사 예절을 보인 미하일은 코미디 쇼를 하는 광대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지냈던 곳에서는 가벼운 도발은 일상이었으니 이카르트 나름대로 미하일에게 인사를 한 것이었지만 미하일이 받아들인 바는 본 뜻 그대로 였다.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며 이카르트는 생각했다. 꽉 막힌놈이야. 더럽게 재미없는 놈. 이카르트에게 있어서 미하일의 첫 인상도 개인적인 기준으로는 최악이었던 것이다. 그가 나인하트의 앞에 서서 무슨 말을 했는지, 둘이서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둘만이 알고 있다. 다만 분을 삭이기 위해서 검을 다듬고 있던 미하일은 뒤늦게 들어온 기사들이 하는 말을 듣고 검을 놓쳐 발등을 찍고 말았다. 미하일의 고통어린 비명 소리가 에레브에 울려 퍼졌다.
“저는 이해가 안갑니다.”
“안 하셔도 됩니다. 제 결정이니까요.”
“여제님께서도 허락 하셨습니까?”
“당연히. 전력 보강은 썩 효율적인 일이라고 설명 드렸습니다.”
“저는 반대입니다.”
“미하일. 서로가 첫인상이 최악이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만, 개인적인 감정으로 일을 그르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그건 또 어디서 들었습니까?!”
“에레브의 모든 건 제 눈이니까요.”
미하일은 자신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아침부터 재수가 없더라니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전력을 보강한다고 치면 정식으로 기사단을 모집하는 포스터를 붙이고 새 기사단원을 받아들여도 충분한 일인데 어째서 저런 시꺼면 도적을 나인하트가 받아들이기로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엇보다 계집애라는 말이 자꾸만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미하일. 수련하러 가세요.”
나인하트가 산처럼 쌓인 일감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미하일은 별 수 없이 나인하트의 집무실을 나왔다.
5. 미하일과 이카르트는 옛날부터 친했구나~ (feat 오즈)
이후 미하일과 이카르트가 어떻게 지냈느냐 하면은 정말 하루에 세 번 이상은 꼬박꼬박 싸웠다. 둘 다 서로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면 부딪히지 않는 방법이 최선이었고 역시 처음에는 미하일도 이카르트도 서로를 무시했다. 그러나 식당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반찬을 누가 먹느냐는 아주 사소하고도 사소한 문제로 부딪힘의 첫 선을 보이기 시작했고, 성격의 닮은 구석은 눈을 씻고 찾아보래도 찾을 수가 없는 그 둘의 유일한 공통점이 쉽게 불타오른다는 다혈질적인 기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나인하트는 허허로운 웃음을 지었다. 보기엔 재미있지만 관리하기에는 한없이 귀찮은 톱니바퀴가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이의 놀림이라면 가볍게 웃고 넘어갈 미하일이 이카르트의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비아냥을 들으면 목에 핏대를 세우고 버럭버럭 소리지르기에 바빴으며 그에 맞서 이카르트 또한 살의를 담아서 미하일에게 표창을 날려댔다. 나인하트에게 예절 교육을 받아 저속한 말은 입 밖으로 내지 않는 미하일이었지만 이카르트에게만큼은 예외로 졸렬한 좀도둑이니, 깔짝깔짝 표창만 던지지 말고 정식으로 결투를 신청하라느니 같은 말을 잘도 뱉어 냈다. 이카르트는 가시돋힌 미하일의 발언에 코웃음을 치며 뒷골목에서 배운 갱스터 욕설을 하거나 내가 미쳤냐 무식하게 네놈 검이랑 부딪히면 내 소중한 암기들이 전부 망가질 것이 뻔할텐데 내가 돌았냐 너랑 정식으로 싸우는건 내 시간이 너무나 아까워서 차마 그렇게 하지도 못하겠다. 세상 물정 모르는 도련님은 엄마 젖이나 더 먹고와라. 같이 말을 두 번 세 번 꼬아서 하기 바빴고 서로를 해하지 못해 안달인 싸움이 계속해서 이어지자 시그너스가 나인하트에게 걱정스럽게 저 둘 저렇게 놓아 두어도 괜찮겠느냐고 말 할 정도였다. 나인하트도 처음에는 둘 중 하나만 조용히 만들면 되겠거니 싶어 여제의 힘을 빌어 미하일을 조용히 시킬 생각이었지만 시그너스의 염려가 미하일의 귀를 스쳐 지나간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식당의 상이 뒤집어 엎어졌다. 솔직히 이카르트의 깐죽거림을 반나절간 참은 미하일이 대단한 것이었지만. 나이는 동년배 쯔음, 서로가 상성이 정 반대이니 수련에도 어느정도 도움이 되겠고, 관찰하고 들어본 바에 의하면 미하일과 이카르트는 과거도 비슷한 듯 해 붙여 놓든 떨어트려 놓든 서로에게 도움이 되겠다 싶어 에레브에 놓아둔 것이었지만 이렇듯 싸움이 점차 기물 파손으로 이어지자 나인하트는 골머리를 앓았다.
그날도 다른 날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미하일과 이카르트는 아침에 일어나서 잠이 들 때까지 사소한 것마저도 경쟁삼았다. 식당에서 누가 밥을 많이 먹느냐, 누가 에레브를 더 많이 뛰어다니느냐, 누가 팔 굽혀 펴기를 더 오래 하느냐, 누가 무기고에 있는 짐을 더 많이 옮기느냐, 누가 숨을 덜 쉬느냐까지. 그렇게 싫어하면 붙어있지 않으면 될 것을 서로가 서로를 경쟁상대로 보는 탓에 아이러니하게도 둘은 서로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해 하기까지 했다. 물론 자신이 없을 때 상대방이 경쟁하고 있는 것에 대해 더 진도를 많이 나갔을 까에 대한 불안감이지 다른 감정은 한톨도 섞여있지 않았지만. 나인하트는 나날이 쌓여가는 에레브 기물파손 비용 영수증을 보며 나날이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갔다. 이러라고 그 둘을 데려 온 것이 아닌데. 물론 서로가 경쟁하며 무력이 성장하는 것은 반가웠지만 빼곡하게 적힌 영수증은 전혀 반갑지 않았다. 아직 정식 기사도 아니라 용돈삼아 주는 봉급도 적다. 그러니 봉급에서 깔 수도 없다. 미하일과 이카르트 본인들이 아닌 그들이 만들어내는 금전적인 문제로 전전긍긍하던 나인하트는 두배로 늘어난 식대 영수증을 보고 마침대 중대한 결정을 하게 되었다.
8. 에레브의 미래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나가세요.”
“네?”
“뭐?”
이럴때만은 타이밍이 기가 막히다. 동시에 대답하고 동시에 서로를 노려보는 미하일과 이카르트를 보며 나인하트가 생각했다. 상극이 지나쳐서 세상 한바퀴를 돌아 다시 만난 것인가. 나인하트는 쓰고 있던 안경을 위로 치켜 올렸다.
“임무입니다. 아래에 이러저러한 약초가 있는데 둘이서 구해오면 딱 맞을 것 같습니다. 마침 에레브가 리프레 위를 지나갈 때입니다. 마음같아서는 집어 던지고 싶지만 비행정으로 안전히 땅에 내려놓아 줄 테니 감사히 여기세요.”
“전혀 감사하지 않거든?! 당신 우리, 아니 내가 리프레에서 살아남을 거라고 생각해?”
“살아남지 못합니까?”
“눈이 달려있긴 한거야? 아래 몬스터 수준을 보라고!”
나인하트는 이카르트에게도 언어 예절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습니까? 안타깝군요. 저는 전력이 될 만한 인물을 거두어 들였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제 앞가림도 못하는 어린아이를 모셔온 모양입니다.”
미하일은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이 나인하트에게 수업을 받을 때 힘든 소리라도 할라 치면 ‘그것도 못합니까?’ 같은 뉘앙스로 도발을 받았던 광경이 앞에 서 있는 사람만 바꾸어 또 다시 눈 앞에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나인하트. 지금 리프레 숲 속으로 가는건..”
우리, 아니 저로서는 능력 밖의 일입니다. 라고 끝을 맺었어야 할 말은
“못해?”
이카르트의 인터셉트로 끝을 맺었다. 미하일은 옆에서 짝다리를 짚고 서있는 이카르트를 쳐다 보았다. 느릿하게 돌아가는 머리가 삐그덕 소리라도 내는 것 같았다.
“도련님은 그것도 못하냐고. 숲속에서 살아남는거 말이야.”
“그냥 숲속이 아니잖아. 리프레라고.”
“못할 것도 없지. 낮에 눈치 보면서 돌아다니고 밤에는 나무 위에서 잔다면 말이야.”
“너는 그렇게 할 수 있나보지?”
“못합니다. 그는 아직 이곳에서 수련을 더 해야하는 아이거든요.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이쯤 되었으면 슬슬 한사람 몫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내려 보낼 생각이었는데 아직도 한참 멀었군요. 괜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나인하트가 아주 알맞은 타이밍에 또다시 이카르트를 도발했다. 미하일은 나인하트의 의중을 파악했지만 그의 의중보다 이카르트의 말을 받아치는 것에 정신이 팔려 자신도 모르게 말을 흘려보내고 말았다.
“난 간다. 다시는 그딴 소리 못 꺼내게 만들어 주지.”
이카르트가 언제적의 미하일이 했던 것처럼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말했다.
“이카르트는 어른이 되려고 하는군요. 미하일?”
나인하트가 온화하게 웃는 모습으로 미하일을 돌아 보았다. 미하일은 아차 싶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저자식은 못 갈걸.”
이카르트가 비죽비죽 웃으며 말했다.
“갑니다.”
그 웃는 얼굴을 본 순간 이성은 뚝 끊어졌고,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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