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티넬버스AU

*체질 판정 이후 성년이 지나서야 가이드와 센티넬은 서로를 감지할 수 있게된다





Q 가이드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어, 글쎄요. 역할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센티넬의 감정을 조절해 줄 수 있는 억제력 같은게 아닐까요? 책에는 그렇게 나와 있던데.

Q 가이드의 사회적 위치에 대해서는?

네? 어어.. 그렇게 눈에 띈다거나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냥 일반인에 가깝지 않은가? 싶을때도 많고. 불편하다고 생각한 적도 없, 아야. 아파 엄마!

Q 마지막으로 센티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센티넬은 주변에서 본 적 없는데, 음, TV에서 나오는 센티넬이라면 조금 무서울 것 같아요. 뉴스에선 대부분의 센티넬이 사고나 범죄를 일으킬 확률이 높다고 말했으니까. 게다가 관련 기사도 많이 나오구요.

Q 잠깐, '센티넬은'이라면 가이드는 주변에서 본 적이 있다는 말씀이신지?

네? ...아니, 저 지금 좀 바쁜것 같아서요. 죄송합니다!

Q 바쁘지 않으신 것 같은데. 저기. 저기요!

죄송합니다!!



"이즈쿠.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말 했잖니!"

미도리야는 침통하게 식탁 앞 의자에 앉았다. 하지만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는 무슨 말을 해야하는지 잘 모르겠단 말이야. 쾅 소리가 나도록 식탁에 얼굴을 박은 미도리야를 흘끗 돌아본 그의 어머니가 한숨을 쉬었다. 그녀가 자신의 아들을 질책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기다렸던 주말에 모처럼 시간이 난 미도리야와 모자지간이서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대학생 취재팀이라는 사람들에게 붙잡혀 잠시 인터뷰를 했고, 그녀의 아들이 허둥거리다 발설해서는 안되는 비밀을 까닥 입 밖으로 내뱉을 뻔한 것이다. 사실 미도리야는 그게 그렇게 중요한 비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가이드를 주변에서 본 적이 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없는 밥상을 뒤집어 엎고 옆에서 잠시 말을 멈춘 아들을 한 대 쥐어박은 후 (좀처럼 손찌검을 한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질질 끌어왔으면 싶었을 정도로 크게 놀랐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냉수를 한사발 들이키는 어머니의 뒤로 미도리야가 고개를 들었다. 표정이 부루퉁했다.


'가이드'. 미도리야 이즈쿠는 가이드였다. 현 세상은 태어나 1차적으로 개성이라는 체질을 선사받고 부가적으로 '센티넬','가이드'라는 체질이 발현된다. 본인이 센티넬인지, 가이드인지, 아니면 보통 인간인지는 14살을 전후로 병원에서 받는 건강검진에서 알 수 있었다. 누구나가 하나씩 가지고 있는 개성과는 다르게 센티넬과 가이드는 희박한 확률로 나타났다. 워낙 희소한 나머지 세간에서 보는 시선은 거의 희귀병 취급이었다. 센티넬은 개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또다시 강력한 신체능력을 얻는다. 처음 그 사실이 밝혀졌을 때에는 진화한 인류가 아니느냐, 새로운 격동기가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의견으로 시끄러웠지만 곧 얻는 것 만큼 잃는 것도 많다는 사실마저 밝혀지면서 정말로 희귀병 취급이 되어버렸다. 

센티넬은 스스로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다. 한번 분노나 슬픔, 기쁨과 같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일정 상한선을 넘기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발작을 일으키는 것처럼 주변에 피해를 입히고 종국에는 온 몸의 혈관이 터지고 뇌가 녹아내려 사망한다. 그들이 세상에 등장한 이후 벌어진 각종 문제 탓에 센티넬에 대한 인식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가이드. 가이드는 센티넬의 감정조절을 도와줄 수 있는 역할이었다. 곁에 있거나 간단한 신체 접촉으로 활활 타오르는 센티넬의 감정에 물을 부어줄 수 있는 것이 가이드다. 희귀한 센티넬 이상으로 가이드는 정말 드물었고, 덕분에 센티넬의 표적이 되는 일이 왕왕 일어났다. 미도리야의 어머니는 바로 그 점을 걱정했다. 그러나 아들이 해코지를 당하진 않을까 한걱정을 하는 어머니와는 달리 미도리야는 가이드인 것을 굳이 숨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인식이 좋지 않은 전자와는 별개로 가이드는 일반인과 별반 다를바가 없었으므로 가이드라는 체질은 미도리야에겐 일반인이 RH- 혈액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정도와 비슷한 문제거리였다.

"다음부터는 조심할게 엄마."

"엄마는 항상 걱정이야."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니까. 주변에 센티넬도 없는걸."

그러나 본인의 생각 이전에 걱정이 많은 어머니를 달래드리는 것이 우선이었다. 미도리야는 부딪혀 얼얼한 코를 문지르고 의자에서 일어나 어머니의 등을 툭툭 두드려 주었다.

"그래도 웬만해선 네 체질을 남한테 얘기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응. 그럴게."

빙그레 웃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마주 웃어 주었다. 


*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언제나처럼 하루의 일과 중 하나인 히어로들의 활약상을 정리하기 위해 채널을 돌리는 도중 미도리야는 관심을 끄는 기사의 자막을 보았다. 새로 가이드 등록 법안을 제시, 잇따른 반발이 이어져- 잠시 리모컨을 누르던 손가락을 떼었다. 무미건조하게 소식을 전하는 앵커의 말이 들려왔다.

국가에서 주도해 센티넬과 가이드를 매칭시키자는 내용의 법안이 제시되어 화제에 올랐습니다. 본 법안은 차별받는 센티넬의 인식을 상향 시키고 가이드라는 재원을 유용히,

완전히 물건 취급 하네. 남 일인 듯 성의없이 고개를 끄덕거린 미도리야가 채널을 바꾸어버렸다. 뉴스보단 일단 오늘의 히어로 활약상. 분명히 놓친게 있을 테니까. 미도리야에겐 그것이 더 중요했다.


*


"이즈쿠, 오늘도 조심하고, 다쳐오지 말고!"

"알겠어. 조심 한다니깐!"

"말로만 조심한다고 하지 말고! 너는 바닥에 돌멩이가 몇개 있는지도 잘 봐야 해. 안 다쳐서 오는 날이 생긴다면 엄만 정말 기쁠거야."

"다녀올게!"

"빼먹은건 없는지 다시 살펴봐!!"

"엄청 늦었단 말예요. 오늘 주번이야!"

현관 밖까지 슬리퍼도 신지 않은 채 맨발로 배웅을 나오며 끊임없이 조심하라고 외치는 어머니를 뒤로하고, 미도리야는 생각보다는 꽤 늦어진 등교길을 나섰다. 정말 어쩔때면 걱정도 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불효막심한 생각이지만, 어머니의 애정어린 등쌀에 한숨을 폭 내쉬고 기분좋게 미소지었다. 날이 맑았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기 전의 하늘은 물빛을 머금은 듯 청명했고 오후가 되면 조금씩 더워지기는 했으나 이른 아침 등굣길의 온도는 알맞게 서늘했다. 수백번을 지나가 새로울 것이 없는 거리가 등교하는 학생들로 서서히 부산스러워지고 있었다. 언제나와 같이 새빨간 운동화를 신고 걷는 걸음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올마이트가 자주 나오는 tv프로그램의 오프닝 곡이었다. 어제의 작은 소동이 없었던 일처럼 느껴졌다. 괜찮다고 되뇌었지만 조금은 가라앉았을지도 모르는 마음이 익숙한 선율을 타고 몽실몽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미도리야 이즈쿠가 살아온 지난 십 몇년은 지극히 평범했다. 아니 조금은 좋지 않은 의미로 특별했을지도 모른다. 올마이트와의 극적인 만남을 떠올리며 미도리야가 홀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개성이 없는 것만 빼면, 무시당했던 것, 괴롭힘 당하고 얻어맞았던 것만 빼면, 친구도 있고 부모님고 계시고, 큰 사건사고에 휘말리지 않고 평탄히 보내지 않았는가. 물론 웅영에 들어오면서부터는 그 전의 시간들이 잔잔한 호숫위를 부유했던 것으로 여겨질 정도로 거친 풍랑에 휩쓸렸지만 그것도 모두 제가 받은 축복이려니 생각했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니까. 받은 개성을 올바르게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개성의 틈바구니에 끼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도 충분히 풍족하다 못해 넘쳐나며, 스타트 지점에 설 수 있는 권리를 받아 타인을 따라잡아 나가기에 여념이 없는 삶이라 가이드라는 체질이 자신의 인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다. 그간의 경험들로 미루어보아 그리 대수롭지 않을 듯도 하고. 그냥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떠한 것이든 자신의 안에서 올마이트와 히어로라는 꿈이 차지하는 비중보다는 작을 테니.

지잉-

성찰에 가까운 생각에 잠겨있던 미도리야가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소리에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주변에 있던 몇몇이 굉장히 미묘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창피하다. 얼굴에 열이 올라 미도리야는 걸음을 빨리 하며 주섬주섬 주머니에 있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아침에 연락이 올 사람이 있던가? 의아한 표정으로 발신자 표시를 본 미도리야의 얼굴이 밝아졌다.

-미도리야. 화단에 꽃이 피었어.

발신자는 최근 부쩍 가까워진 토도로키 군이다. 히어로 살인자 사건 이전에 연락처를 주고받긴 했지만 연락을 하기에는 아직 어색한 사이라 느껴져 전화번호부에서 잠을 자고있던 번호였다. 그러나 얼마 전 도서실에 히어로 관련 신간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가 토도로키를 만났고, 한 권 남았던 신간을 그가 먼저 양보해 준 이후로 자연스럽게 일상적인 연락이 트이게 되었다. 지금은 사소하게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간단한 안부 문자도 주고받을 수 있다. 그와 나누는 대화는 생각보다 굉장히 즐거웠다. 친구랑 연락을 주고받는 건 원래 이렇게 재미있는 거구나. 미도리야는 토도로키의 문자를 확인하며 그렇게 생각했다.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은 히어로 과에 입학을 하고 나서도 드물었으니 함께 책을 읽거나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며 잡담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토도로키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때때로는 마악 잠이 들기 직전 주고받은 문자가 새벽까지 시간가는 줄 모르게 이어질 때도 있었다. 단어를 고르고 골라 문자를 보내고, 휴대폰을 가슴위에 올려놓은 채 답장을 기다리거나 전에 왔던 문자들을 죽 읽고 있으면 어김없이 진동이 울렸고 그에게서 온 답장을 찬찬히 읽고 다시 단어를 골라골라 답장을 보내길 반복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날 걱정이 조금씩 즐거움을 앞서기 시작하면 언제나 토도로키 쪽에서 먼저 오랜 시간 미도리야를 붙잡아 두어서 미안하다 사과를 했고, 미도리야는 그렇지 않다 황급히 답을 했다. 서로가 사과를 나눈 뒤는 잘 자라는 인사였다. . 토도로키군도 잘 자. 내일 보자. 답을 한 뒤 눈을 감아 자신이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것인가, 행복해질 자격이 있는 것일까 퍼뜩 불길한 예감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럴 때는 용기를 내자, 해낼 수 있어 따위의 자신을 응원하는 말을 되새기다 잠의 수마에 빠져들며 잊어버렸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가이드나 센티넬이니 하는 골치아픈 문제는 문자 하나로 머릿속에서 저 멀리 떠나간지 오래였다.

-그래? 지금 학교 가는 길이니까 곧 볼 수 있겠다.

문자가 전송되었다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휴대폰을 닫으려 했으나,

-기다릴게.

빠르게 온 답장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닫았다. 토도로키 군 생각보다 답장이 빠르니까. 교문에 들어서는 길에 그가 말한 화단이 어디인가 둘러보자 저만치 구석에 정말로 이름 모를 꽃이 피어 있었다. 이걸 말해주고 싶었을까. 미도리야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


미도리야 군. 오늘 아침에 센티넬 뉴스 봤어?”

보송해진 기분으로 교실에 들어왔을 때 난데없이 미도리야의 안면을 강타한 것은 기억 너머로 날려버릴 뻔 했던 센티넬 사건에 대한 질문이라 미도리야는 웃는 얼굴로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또 사고쳤더라. 어디냐, B시에서 난동부렸다며.”

, 출근 시간대 아니야?”

히어로 몇 명 출동했던데. 센티넬을 몇 명이서 배겨낼 수 있으려나.”

지로가 귀에서부터 늘어진 이어폰 잭을 손가락 끝으로 꼬면서 말했다.

요즘 부쩍 느는군.”

빌런도 힘들어 죽겠는데.”

토코야미가 대화에 끼어들었고 뒤이어 키리시마가 우는 소리를 했다.

국가에서 가이드랑 센티넬을 법적으로 매칭시키자는 이야기도 나왔더군요.”

야오요로즈까지 대화에 등판했다. , 이런 이야기는 조금 꺼려지는데. 히어로 이야기가 나오면 대화에 끼고싶어 안달복달 못했던 미도리야가 교실 한가운데 모여 열을 내는 친구들을 슬금슬금 피해 교실 뒤편에 위치하는 본인 자리로 향했다. 가방을 올려놓고 보니 등교하면 언제나 먼저 인사를 건네 주던 토도로키가 보이지 않았다. 교실을 두리번 거리며 있어야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자각한 미도리야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가이드는 무슨 죄야. 현대판 노예같잖아.”

그럼 히어로는 노예 아니냐. 야근에 3D업종으로 분류되는데다 목숨은 담보고, 욕도 얻어먹고.”

위험한 만큼 벌잖아.”

유명해지고.”

“TV에도 나오고.”

참으로 불순한 목적이 아닌가! 우리는 우리가 지닌 힘에 책임을 지고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히어로를 하는 것이야!”

한마디씩 던지는 급우들의 흑심어린 발언을 듣다못한 이이다가 열렬히 외쳤다.

“TV에 나오고 돈도 많다면 여자들에게의 인기는 따놓은 당상이겠지...”

이이다의 외침이 무색하게 미네타가 음흉한 얼굴로 치고 들어왔다. 이이다는 짜게 식은 얼굴로 미네타를 보았다.

그래서 우리가 히어로 지망인게 아니냐.”

이런 자본주의의 돼지들...!”

낄낄 웃는 카미나리의 장난스러운 말에 반의 누군가가 절규했고 곧이어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다들 제각각 한마디씩 던지느라 교실이 다시 시끄러워졌다. 미도리야는 가방에서 천천히 교과서를 꺼내 쌓아놓고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수신메세지 0. 기다린다고 했는데 어디를 간 걸까. 수업 시작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가이드와 센티넬에 이어서 히어로의 본질이란 무엇인가로 심도있고 욕망에 거리낌 없는 대화가 이어지던 중 뒷문이 열렸다. 무심한 표정으로 손을 툭툭 터는 주인공은 토도로키였다. 너희들이 무슨 말을 하던 나는 관심이 없다-는 얼굴로 슬쩍 반을 둘러보며 누군가를 찾는 듯 하더니 미도리야를 발견하자 반갑게 다가왔다.

미도리야. 좋은 아침이야.”

. 좋은 아침이야 토도로키 군. 교실에 있을 줄 았았는데 없어서,”

어디 있는지 궁금했어. 말을 마저 이으려던 미도리야는 어라? 자신이 토도로키의 사생활에 지나치게 간섭하는게 아닌가 해 말을 삼켰다. 연락 좀 한다고 친한척한다 생각하면 어쩌지.

잠깐 화장실에 갔었어.”

토도로키가 입꼬리를 올린 듯 아닌 듯 애매하게 미소지으며 끊어진 미도리야의 의문에 대답했다. 무안해진 미도리야는 헤헤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이거, 어제 다 읽었어.”

, '히어로의 108번뇌’! 다 읽었구나. 우와 내가 이걸 얼마나 읽고싶었는데!!”

옆에서 우연히 그들의 대화를 들은 아시도가 상당히 마니아틱한 책의 제목에 토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 먼저 읽게 해줘서 고마워.”

, 아냐. 저번에는 네가 양보해줬잖아. 아아.. 드디어 읽는구나.”

점심시간에 반납하러 갈 생각인데, 같이 갈래?”

. 좋아! 기대된다!!”

흥분한 듯 붕붕방방 팔을 흔들어대는 미도리야에게 토도로키가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시끄럽다 이것들아. 여기는 광장이 아니라 학교다. 그리고 수업종 친지 424초 지났어.”

피곤에 쩔어보이는 아이자와 선생님이 피곤에 쩔은 몸짓으로 문을 열고 들어와 귀찮아 죽겠다는 얼굴로 문을 닫았고 보는 사람이 집게 가고싶게 만들어지는 발걸음을 질질 이끌며 교단 앞에 섰다. 본격적인 하루 일과의 시작이다.

 

*


썩 기분이 좋았다. 점심시간에는 후딱 식판을 비우고 먹는 속도가 느린 토도로키를 마저 기다렸다가 함께 도서실로 향했다

책은 어땠어? 재미있는 내용이 많을 것 같았는데.’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어. 최근 새로 발견된 개성에 대해서도 분석이 있을줄은.’‘으아아. TV 방송이나 인터넷 만으로는 전국과 세계의 히어로들을 보기에 너무 부족하니까. 1달동안 기다린 보람이 있구나!’‘1달이나 기다렸어? 그럼 네가 먼저 봤으면 좋았을걸.’‘아냐아냐. 한달을 기다렸는데 일주일을 못 기다릴까봐? 게다가 토도로키군 책 읽는 속도 빠르니까 괜찮아. 빨리보고싶다아.’‘그렇게 보고싶으면 지금 보지 그래?’‘아니지. 이런건 경건한 마음으로 조용한 곳에서 한글자 한글자 탐독해야 하는 거라구.’‘하하.’‘뭐야. 왜 웃는거야 토도로키군.’‘아니, 변함없이 너 다워서.’ 

본질적인 내용은 결국 책을 빨리 읽고싶다였지만 나름대로 농담을 섞어가며 도서실로 가는 길에 그와 대화를 나누었고 도착해 토도로키가 책을 반납하는 것을 지켜보고 떨리는 손으로 신간을 받았다. 그 와중에 잠깐 사서 선생님한테 붙잡혀 요즘 책을 제 반납 기일에 맞추지 않는 학생들이 많다는 푸념과 함께 A반 연체자 목록을 전해받아 부디 말을 전해달라는 신시당부를 들었다. 남은 시간 동안은 학생들이 잘 찾지 않아 조용한 도서실에서 책을 읽기로 했었다. 정숙해야 하기에 서로가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말은 반으로 돌아가는 길이나 하교시간, 정 안되면 밤 늦게 문자를 해도 되니까. 책을 읽어도 되겠느냐 조심스레 건넨 질문에 토도로키는 조금 고민하더니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도 받았겠다 거리낄 것이 없었다. 금방이라도 통통 튀어나갈 듯 안절부절 못하면서 의자에 답싹 앉은 미도리야의 옆에 토도로키 또한 제목이 거의 지워질락 말락한 오래된 책을 한권 골라들고 앉았다.

 

책을 펼쳤을 때 까지는 정신이 남아있었던 것 같은데. 머릿속에 남은건 온통 책 내용 뿐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오후 수업이 시작하기 약 10분 전이었다. 시간을 보고 내가 잠시 잘못봤나 눈을 비빈 미도리야가 곧 경악에 물들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토도로키군, 수업시간이..!”

토도로키도 시간 가는 줄을 몰랐던 걸까? 그러나 당연히 옆에 있을 줄 알았던 토도로키가 없었다.

토도로키군...?”

이름을 불러 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책꽂이 사이에 있을까 찾아 봤지만 도서실 어디에도 토도로키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설마 먼저 반으로 돌아간거야? 토도로키 군이 말 없이 놔두고 가버릴 사람은 아닌데. 내가 불러도 대답을 안했나? 아니면 무심코 먼저 가라고 말해버렸나? 복잡하게 튀어나오는 생각들을 정리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미도리야는 황급히 짐을 챙겨 반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오후 첫수업은 운동장에서 하는 체육 수업이었다. 망했다. 게다가 자신은 주번이었기에 문을 단속하고 출석부도 선생님께 드려야 했다. 정말 망했다. 달리듯이 교실에 도착해 주섬주섬 체육복을 꺼내다가 갈아입을 시간조차 부족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미도리야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바지에 급하게 다리를 끼워 넣고 상의를 챙겼다. 나머지는 복도에서 갈아입자! 교복 위에 껴입어 버리자!

교실을 나섰던 미도리야가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출석부를 챙기는 것을 빼먹었다. 워낙 급하게 행동한 탓에 교탁 위에 놓여있는 노란색 출석부를 집어들다 체육복을 놓치고 출석부를 포함한 나머지도 우수수 떨구어 미도리야는 울상을 지었다. 점심시간 때 까지는 분명 행복한 하루였는데..! 주섬주섬 집어들다보니 마음이 허허로워 졌다. 어차피 지각이다. 게다가 문서를 고정하는 철이 풀렸는지 출석부 안에 있던 학생들의 기록부도 눈발 날리듯 흐트러져 정말 되는 일이 없구나, 미도리야를 자조적으로 읊조리게 만들었다. 한 장 한 장 친구들의 개인적인 기록이 담긴 종이를 줍던 미도리야의 손에 익숙한 한 장이 걸렸다. ‘토도로키 쇼토토도로키 군의 생활 기록부구나. 훔쳐볼 마음은 없었다. 타인의 개인적인 사정을 보는 것은 엄연히 실례였으니까. 간단한 신체 프로필과 기록사항이 궁금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다음 종이를 줍기 위해 아무생각없이 시선을 내렸을 뿐이었다.

“....?”

특이사항을 기록하는 항목 맨 밑에 붉은 글씨로 적혀있는 것은 분명,

말도 안돼.”

사람은 너무나 당황스러우면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생각한 것이 튀어나와버린다. 몇 번을 보아도 적혀있는 글구는 똑같았다. 토도로키 쇼토. 특이사항/센티넬 현재 매칭된 가이드는 없음. 주기적으로 약물을 복용중. 체질의 발현 시기는- 자신도 모르게 기록을 읽어나가는 미도리야의 손이 떨렸다. 복잡한 기분이었다. 매스컴에서 문제의 씨앗이라 떠들어대는 센티넬이 본인의 주변에 있는 사람이었으며 친구였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게다가 미도리야 자신은, 미도리야는 떠오르는 불쾌한 생각을 털어내려 고개를 흔들었다. 미도리야가 가이드인 체질을 숨기듯이 토도로키도 분명 자신의 체질을 숨기고 싶었을 것이다. 말을 해주지 않는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자신을 둘러싼 주변의 시선이 달라지는 것은 불보듯 뻔했으니. 미도리야가 입술을 씹었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봤자 나오는 답은 하나였다. 비밀로 하자. 그렇게 결정하고 마저 출석부를 정리하기 위해 손을 뻗는 순간 교실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미도리야가 순간적으로 숨을 멈추었다.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부술 듯 큰 소리를 내며 교실 문이 열렸다. 뒤이어 토도로키가 흐트러진 모습으로 들어왔다. 뛰어왔는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교탁 앞에 있는 미도리야를 발견한 토도로키가 그에게 다가오다 손에 들린 출석부를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황망한 눈동자가 비져나온 종이 뭉치로 향했고 마침내 미도리야가 손에 든 자신의 기록에 머물렀다. 미도리야는 토도로키의 얼굴이 절망으로 일그러지는 모습을 보았다.

“....미도리야.”

, 토도로키군. 미안, 이러려던건 아니었는데, 그러니까,”

미도리야는 말을 더듬었다.

그러니까....”

센티넬은 스스로의 감정을 통제할 수 없다. 그의 얼굴을 차마 마주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린 미도리야의 머릿속에 퍼뜩 그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자신도 모르게 한발짝 토도로키에게서 물러섬과 동시에 미도리야는 스스로의 행동에 놀랐다.

“......”

사고였어. 실수로 봐 버렸어. 정말 미안해 토도로키군.”

“......미도리야. 나는,”

한참 입술을 씹으며 바닥을 내려다보던 토도로키가 힘들게 입을 뗐다.

네가 가이드인걸 몰랐어.”

어?

맹세코 몰랐었어. 정말이야 미도리야. 너를 이용하려던 것이 아니야.”

무언가가 어긋나 있다. 미도리야와 토도로키는 분명히 서로 다른 것을 말하고 있었다. 내가 네 비밀을 훔쳐 보았으니 나에게 화를 내야하는 것이 아니야? 미도리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토도로키를 바라보았다. 토도로키의 말이 절박함으로 인해 점점 빨라졌다.

정말이야. 믿어줘. 아버지같은, 그런 목적이 아니야. 나는 그저. 그저 네 곁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서. 그게 결국 이용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어떻게든 용서를 빌어 보려던 토도로키는 자신의 말 끝이 떨리는 것을 느끼고 입을 다물었다. 교실 안에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의 감정으로 인한 정적이 가라앉았다.






-

?? 이렇게 길게 쓰려던 게 아니었는데... 쓰고싶었던 부분은 아직 쓰지도 못했다.

합작, 원고 이외에 개인작은 오랜만이라 재미있게 썼다.



토도로키 쇼토는 미도리야에게 퍽 호감이 있었다. 아니, 호감이라는 작은 단어로 표현할 것이 아니었다. 이 감정은 사랑에 가깝다. 외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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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청주산코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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